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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주경실련
작성일 2013-09-12 (목) 18:16
ㆍ조회: 1713    
IP: 112.xxx.56
7년 옥살이 한 가장의 진실찾기 "온 힘 다해 누명 벗겠다"/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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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고성옥씨와 진실찾기 모임 ▲ 28일 오전 고성옥씨 7년 억울한 옥살이 진실찾기 모임(약칭 고성옥 모임)이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고씨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 양김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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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같은 제2, 제3의 피해자가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

특수강도강간 등의 혐의로 7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고성옥(57)씨가 체포 당시 현직 경찰이 증거조작 및 법정 위증을 했다며 28일, 경찰관 3명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뒤늦게 진실 규명에 나섰다.

이를 위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제주경제정의실천연합 공익지원센터를 중심으로 '고성옥씨 7년 억울한 옥살이 진실찾기 모임'(아래 진실찾기모임)을 결성, 인권사각지대에 있는 약자를 위한 법적 대응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 고씨는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경찰·검사·교도관·국과수 감식원 등 9명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모은 자료를 증거 삼아 수감 중 6회, 만기출소 후 1회 등 총 일곱 차례에 걸쳐 고소했으나 검찰은 묵묵부답이었다.

고씨의 사례는 사회적 약자가 경찰과 검찰 등 국가 공권력을 상대로 싸우며 경찰 초동수사에서 재판까지 일일이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과 함께 대한민국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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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관 3명을 검찰에 고발한 억울한 옥살이 진실찾기모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제주경제정의실천연합 공익지원센터를 중심으로 결성된 '고성옥씨 7년 억울한 옥살이 진실찾기 모임'(이하 진실찾기모임)이 28일 제주지검을 방문, 현직경찰 3명을 위증혐의로 고발했다.
ⓒ 양김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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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지검에 제출한 고발장 '고성옥씨 7년 억울한 옥살이 진실찾기 모임'은 28일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하며 고발상대가 경찰인 만큼 직접 검찰에서 수사해줄 것을 당부했다. 제주지검 경우 고소사건은 일반적으로 차장검사의 재량으로 사건배당 주임검사가 결정되는데, 검사가 직접 수사 하거나 관할 경찰서에 수사지휘를 내려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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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찾기모임을 결성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제주경실련 공익지원센터(센터장 양시경)는 이날, 당시 사건 현장에 출동했던 제주경찰서 경찰관 고아무개씨, 김아무개씨와 감식 담당 경찰관 변아무개씨 등 경찰관 3명을 "각종 증거를 조작하고 법정 허위증언을 했다"며 무고 및 모해위증 혐의로 제주지검에 고발했다. 이는 형법 제156조 '무고의 죄'와 형법 제152조 '모해 위증죄'에 근거한 것으로 고발인은 임문철 제주화북성당 주임신부와 양시경 제주경실련 공익지원센터장이 맡았다.

진실찾기모임은 검찰 고발에 앞서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1년 11월 이 사건에 대한 정보를 접한 후 진실찾기운동에 나서면서 2년여에 걸쳐 관련 증거를 검토, 증인들을 찾아 면담한 결과 고씨의 주장이 진실임을 확인했다"며 "고씨가 범죄자라는 객관적인 증거는 없었으며, 오로지 경찰의 무리한 증거 조작 및 인멸, 짜맞추기식 수사, 거짓 증언만이 난무하는 '범죄 덮어씌우기' 조작 사건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재심 청구를 위해 법적 자문을 의뢰했으나 현행 사법체계에서 재심청구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일임을 알았다"며 "비록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이지만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경찰 3명을 고발하는 활동을 시작으로 사건 재수사를 촉구해 이 시대에 정의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싶다"고 고발 이유를 밝혔다. 이어 "많은 시간이 지나 진실규명에 어려운 점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모든 노력을 기울여 고씨의 억울한 7년 옥살이 누명을 벗기는 데 온 힘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0년 전, 고씨에게는 무슨 일이 생겼나

경찰과 진실찾기모임의 주장을 종합하면 사건의 대략은 이렇다. 2004년 9월 8일 오전 3시 30분에서 오전 4시 25분 사이에 한 남성이 제주시 연동 소재 다세대주택 3층에 침입해 잠을 자던 피해자 장아무개(당시 41세·여)씨를 흉기로 위협해 14K 금반지와 목걸이 등 35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뒤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그대로 달아났다.

당시 옆집 주민(이아무개씨)으로부터 112 신고를 접수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 주변에서 범인을 목격했다는 한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이 일대를 수색하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신문배달을 하던 고씨(당시 48세)를 발견, 특수강도강간 등의 혐의로 긴급 체포해 구속했다.

재판에 넘겨진 고씨는 2005년 2월 1심에서 징역 10년을, 같은 해 7월 2심에서 징역 7년을, 같은 해 9월 대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확정받고 2011년 9월 만기 출소했다.

당시 고씨는 재판과정에서 "신문배달을 하다 누군가 '강도야' 외치는 소리를 듣고 달아나는 범인을 쫓아갔는데 오히려 잘못을 뒤집어썼다"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고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실찾기모임은 "처음부터 피의자 서명과 도장도 없이 경찰이 작위적으로 진술조사서를 만들었고, 판결은 유일한 목격자조차 증인출석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려졌다"며 "범행 증거로 범인을 잡은 게 아니라 국가가 범인을 만들고 마무리 지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진실찾기모임은 당시 수사보고서와 진술서 및 사건일지·판결문 등 400쪽이 넘는 정보공개청구 자료를 토대로 ▲ 경찰의 범행시간 및 알리바이 조작 ▲ 경찰의 증거 부족 및 객관적 사실 묵살 ▲ 신뢰성 없는 피해자와 목격자 진술 ▲ 경찰의 사건현장 타인 족적 인멸 ▲ 경찰의 증거조작 및 법정 허위증언 등을 제시하며 고씨의 무죄를 주장했다. 아래는 진실찾기모임이 제기한 고발내용이다.

진실찾기모임의 고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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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의 증거조작을 반박하는 고성옥씨 7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고성옥씨가 10년전 당시 현장약도를 설명하며 경찰의 제시한 증거에 대해 상세히 반박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고성옥씨의 아버지와 자녀 등 가족까지 모두 나와 누명을 벗겨 줄 것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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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범행 시각 및 알리바이 조작

피의자의 신문 배달시간과 배달된 신문부수를 확인하면 범죄가 발생한 시각에 피의자는 사건 현장에 없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데도 경찰은 객관적인 증거와 사실을 묵살했다. 피해자 장아무개씨는 강도가 사건이 일어난 오전 3시 30분부터 1시간이나 집안에 있었다고 진술했지만 이때 고씨는 신문배달을 하고 있었다. 고씨가 신문배달을 시작한 시간은 오전 2시 30분으로 이미 배달한 신문 180부를 계산하면 2시간 정도가 걸려 3시 30분께 사건 현장에서 약 1시간 동안 시간을 지체할 수 없음이 입증된다. 당시 증인으로 채택된 OO일보 신제주지국장 정아무개씨가 평소 고씨가 하루 배달하는 신문부수와 시간을 진술, 알라바이(현장부재증명)를 증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문부수를 확인하면 간단히 입증될 사안을 경찰은 조사하지 않았으며 경찰은 범행 시각을 4시 20분께로 유도하며 고씨를 범인으로 몰아갔다.

2. 목격자 및 피해자 진술 신뢰성 의문

최초 경찰 진술서에 따르면 최초 목격자 송아무개씨는 누군가 "강도야"라고 외친 후 OO카센터 사거리에서 피의자 고씨를 처음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초동수사시 술을 한 목격자 송아무개씨의 진술에만 의존해 범인으로 인식했다. 실제 첫 목격지점은 사건 현장과 70m 떨어진 OO카센터 사거리다. 이는 목격자 송아무개씨의 일관되지 못한 진술과 이동시간 및 발견 거리 등을 현장 약도를 토대로 분석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경찰은 마치 5m 거리에서 피의자를 만난 것 처럼 허위증언한 송아무개씨의 내용을 토대로 처음부터 고씨를 범인으로 단정짓고 짜맞추기식 수사를 하는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다. 그리고 피해자 장아무개씨의 진술 역시 목격자 송아무개씨의 진술에 의존해 피의자 고씨를 현장에서 범인으로 지목했는가 하면, 피의자에 대한 인상착의에 대해서도 오락가락하는 등 진술서의 내용이 일관성이 없고 신빙성이 없다.

3. 사건현장 발자국 인멸

경찰은 사건현장에서 선명한 발자국을 확보했음에도 피의자의 것과 일치하지 않자 증거를 인멸했다. 당시 사건현장에 있던 증인 이아무개씨(옆집 거주, 당시 112에 신고함)는 경찰진술서를 통해 "사건 현장에 범인 발자국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의 현장감식일지에도 '용의자가 침입한 창문 주변 및 마루 안방 등에 족적 등 용의자를 특징할 증거물을 확인한 바'라고 기록돼 있다. 또 피의자 고씨가 경찰조사를 받을 때 조사 경찰관이 고씨가 신고 있던 운동화를 갖고 간 뒤 범행장소에서 확보한 범인의 발자국과 대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피의자 고씨는 "경찰은 명백한 증거였다면 제출했겠지만, 대조 결과 일치하지 않아서인지 결국 증거를 없앴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옆집 이아무개씨(상기 동일인)가 청소해버려 족적 채취를 못했다고 했지만, 증인 이아무개씨는 면담 과정에서 "발자국을 보았고 절대 지우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재판과정에서 피고인(고씨)측의 증인 요청이 있었지만 경찰은 발자국을 목격하고 112에도 신고한 이아무개씨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다며 재판에 출석시키지 않았고, 이웃주민(이아무개씨)이 청소해서 족적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법정 위증하는 등 피의자를 범인으로 몰고 갔다. 범인이 범행장소에 1시간 동안 머물었다면 창문·거실·안방·침대 등에 수많은 발자국을 남겼을 텐데 첨단 장비를 보유한 경찰 감식반에서 이조차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4. 국과수의 모근(DNA)감식 조작

고씨가 2006년 11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인한 결과 경찰 수사 당시 감식결과와 재판 당시 감식 결과가 서로 다른 약식 보고서로 제출되는 등 위·변조한 흔적과 증거가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범인이 남겼다는 모발 묻은 장갑을 국과수에 감식의뢰했으나 결국 피의자 고씨와 동일하지 않은 제3자의 모발 감식 결과가 나오자 "모근이 없어 감식할 수 없었다"고 공개하지 않았다. 이후 재판과정에서는 피해자(장아무개)의 모발 두 가닥을 두 차례에 걸쳐 채취하고 동일한 피해자 모발을 비교하는 감식 결과를 제출하는 등 감식결과 증거를 짜깁기하고 허위감정서를 작성, 담당 판사로 하여금 과학적인 증거로 오판하게 만들었다. 이는 감정결과서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없는 재판부가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혼동하게 만든 결과를 초래했으며 경찰은 이러한 감식결과를 갖고 "감식결과가 맞다"며 허위 증언을 했다.

5. 노란티셔츠 증거물 조작

경찰은 피의자 고씨의 오토바이 바구니에서 발견했다며 뒤늦게 노란 티셔츠를 증거로 제출했다.이는 피해자 장아무개씨가 "깃이 있는 밝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는 진술에 따른 것이지만 고씨는 당시 하얀색 러닝셔츠를 입고 있었다. 고씨와 피해자의 진술이 맞지 않자 경찰은 도주로 수색 중 다세대주택 1층 빨래 건조대에 있는 비슷한 색의 노란 티셔츠를 가져다 증거로 조작했다. 이는 인근 주민(문아무개씨·여)이 법원에 출석해 문제의 노란 티셔츠가 자신의 것이며 사건 발생 직후에 잃어버렸다고 진술하면서 도난당한 사실도 밝혀졌다. 만약 '노란티셔츠'가 피의자 고씨의 것이라면 땀에 젖은 고씨의 옷에서 DNA가 검출돼야 하는데 분석 결과 아무것도 검출되지 않았다.

오히려 범행시 입었다고 법정에서 주장하던 경찰은 노란티셔츠를 확보하고서도 100일이 넘는 동안 감식 의뢰조차 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의자 고씨가 떳떳하다며 변호사를 통해 강력히 감식을 요청해서 마지못해 의뢰했던 것이다. 실제 노란셔츠는  M사이즈로 평소 105사이즈(구속 당시 키171cm·몸무게 80kg)를 입는 고씨가 입기에는 턱없이 작았지만, 피고발인 경찰 김아무개씨는 "고성옥씨의 옷"이라며 억지주장을 폈다. 이 문제가 재판에서 불거지자 수감 당시 교도관 고아무개씨는 임의로 신체사이즈를 수정·축소 기록한 다음 허위 작성한 건강검진부를 검사에 제출하는 증거조작에 가담했다.

6. 범행 도구 조작

고씨는 당시 오전 2시부터 5시까지 신문배달을 하고, 낮에는 자활후견센터의 주선으로 도배와 집수리를 했다. 경찰은 고씨가 업무상 도구로 늘 안주머니에 지니고 다니던 소형 커터칼을 범행용 흉기로 둔갑시켰다. 그밖에 야간 신문배달에 필요한 손전등 등도 범행 도구로 인식했다. 만약 커터칼로 범행이 이뤄졌다면 칼날에 피해자의 혈흔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경찰은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않았다. 성인을 대상으로 범행을 준비하는 강도가 소형 커터칼을 가지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7. 범정 허위 증언

고씨를 처음 체포한 경찰 고아무개씨는 사건 당일 피의자 검거경위 보고서에 "피의자가 신문배달 중이었고, 신문 배달용 오토바이가 제주시 연동 소재 D빌라 앞에 있었다"고 보고했으나 추후 법정에서 "검문 당시 피의자가 '운동하러 나왔다' '오토바이 위치도 말하지 않았다'"고 거짓 증언해 피의자를 범인으로 오인하게 만들었다. 또 경찰 김아무개씨도 피해자의 오토바이에서 나왔다며 노란티셔츠 증거물을 제출하고 피의자가 입었던 것이라고 법정 진술하는 등 피고발인들은 당시 2004년 9월 8일 고성옥에 대한 피의사건을 수사하면서 증거를 조작하거나 은폐하는 한편 법정에서 관련 내용을 허위 증언했다. 10개월 동안 재판이 진행되면서 채택된 법정 증언은 경찰 증언뿐으로 정작 경찰 측이 확실한 목격자와 증인이라며 내세운 일반인 송아무개씨(최초 목격자)와 이아무개씨는 피고인 고씨 측의 증인 출석 요구에도 결국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법원 "다른 진범 있다고 볼 수 없어... 이전 범행 사실도 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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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지방법원 우리나라 사법체계(3심제)상 일단 확정 판결을 받으면 재심은 하늘의 별따기 처럼 매우 까다롭다. 형사소송법 제420조 재심이유에 따르면 '원판결의 증거된 서류 또는 증거물이 확정판결에 의해 위조 또는 변조인 것이 증명된 때'(1항) 등으로 한정하는 사실상 재심 청구요건조차 갖추기가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 양김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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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동안 진행된 재판 과정에서 고씨는 2005년 5월 제주지방법원에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은 뒤 바로 2005년 7월 광주지방법원에 항소했으나 무죄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진범이 이 사건 범행에 사용한 장갑을 길에 버리기에 이를 주워서 자신이 사용하고자 주머니에 넣었다는 점도 상식에 반하고, 노란티셔츠와 피고인의 조끼 속에서 발견된 커터칼은 피고인이 이 사건의 진범임을 추단케 하는 유력한 증거"라며 "노란티셔츠에 대한 추가 감정을 요구하나 굳이 별도의 증거 조사의 필요성은 없다"고 판시했다.

또 "당시 현장 부근에 출동한 경찰을 만났을 때 방금 전까지 쫓던 진범이 부근에서 사라졌다고 말하며 범인을 추격하는 대신 신문을 배달해야 한다거나 설사가 나서 변을 봐야 한다고 하며 부자연스런 행동을 보이며 어떻게든 모면해보려는 반응을 보인 점을 종합하면 진범이라는 정황이 분명하다"며 "당시 신문배달 여부를 입증할 증거도 없고, 피고인 외 다른 진범이 있다는 주장 역시 뒷받침할 그 어떠한 자료도 없다"고 재판부는 덧붙였다.

아울러 "이 사건 전에도 흉기를 소지해 타인의 주거에 침입해 잠을 자고 있던 여성을 추행하다가 뒤쫓아 온 여성의 남편을 흉기로 찔러 준강제추행 및 살인미수죄로 징역 7년을 선고 받는 등 집행유예 또는 실형으로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 데다 살인미수죄 등으로 실형을 복역하던 중 가석방돼 약 6개월 만에 범행을 저지른 점을 감안하면 중형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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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지방검찰청 억울한 옥살이 진실찾기는 이제 검찰 손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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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재판부 결정과 관련해 진실찾기모임은 "고씨가 과거에 살인미수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짜맞추기식 수사가 용인되서는 안 된다"며 "우리 사회에서 순간의 실수로 빚어진 전과를 속죄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가장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낙인찍고 없는 죄까지 만들어 뒤집어 씌우고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실찾기모임은 이어 "고씨가 범죄자라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범죄가 아니라는 증거 역시 명확하다, 고씨는 무소불위 국가 공권력과 사법부의 오판이 낳은 무고한 희생양일 뿐"이라며 "다시는 이런 불행스러운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고씨는 "당시 재판에서는 내 열악한 상황으로 경찰의 증거 조작 등을 밝혀낼 수 없었다"며 "살인미수로 한 차례의 실형을 복역한 사실 등을 내 진술을 최고의 약점으로 잡고, '이 사건도 그랬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인간의 존엄과 자유라는 존귀한 가치를 짓밟았다"며 "사회정의 차원에서도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밝혔다.

현직경찰 고발건과 관련 제주경찰 측은 "이미 오래전에 확정판결이 내려진 사항으로 별다른 대응방안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이미 10년이 지난 사건인 만큼 당시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인터뷰]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저는 무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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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맹세코 무죄입니다 10년전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고성옥씨는 "저는 목숨을 걸고 무죄라고 맹세한다"며 "반드시 누명을 벗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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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옥씨는 세 남매를 둔 가장이다. 지금도 집수리와 막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무슨 말을 해야 제 심정과 무고함을 알릴 수 있을지 막막합니다. 강도, 성폭행범으로 낙인 찍혀 가족에게 다가가지도 못했어요. 이 사건으로 인한 가족의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이 나기 전 삼남매를 위해 고난의 가시밭이라도 걸어가겠다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살아왔고,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했다"는 그는 "차라리 제가 범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범인이 아니기에 억울해서 죽지도 못해 눈물로만 살아왔다"고 그간의 심경을 토로했다. "몇 달 전 전자발찌 문제로 다시 법원출두를 요구받았다"는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도 고향도 못가고 친구도 만나지 못합니다. 전자발찌까지 차면 유치원이나 학교 근처에 갈 수도 없습니다. 하나뿐인 손녀를 보러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전자발찌 취소 신청을 했습니다. 자식들 집에도 못가고, 어린 손녀도 보지 못하는 게 과연 사람이 사는 겁니까."

그는 "교도소에서도 이 사실을 알리려고 노력했고 경찰에 조사를 요청하기도 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다"며 "수사 및 재판진행 과정 그리고 복역하는 과정에서 백방으로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누구 하나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더라"고 통탄해 했다. 이어 "출소한 뒤에도 우리 사회에 양심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믿고, 서울과 제주 지역의 여러 단체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협조를 요청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며 "경찰서 정문 앞 등에서 1인 시위도 3개월 가량 했고, 언론에도 호소했으나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스스로 누명을 벗겠다는 의지는 복역 중에 정보공개청구를 할 정도로 강해졌다. 더욱이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과학범죄수사 관련 서적 수 권을 탐독했다.

"노란티셔츠 증거 조작과 모발 감식 결과만 보더라도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제가 여름철에는 보통 두 시간 정도 신문배달을 했는데, 땀이나 때가 목덜미와 소매 부분에 묻을 수밖에 없습니다. 땀에 젖은 옷에서 유전자형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는 경찰 증거물(노란 티셔츠)이 누구도 입은 적이 없는 깨끗한 빨래임을 반증하는 겁니다.

의류에 자외선 발색법을 이용해 조명을 비추면 때·땀·각질 등은 세포가 있는 단백질이어서 특유의 빛을 발합니다. 조금이라도 옷에 땀이 배어 있다면 검출이 가능함은 물론 다중 중합연쇄반응으로 등폭해 표본의 정략을 수백만 배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또 1나노그램(1/4000만 방울) 정도의 표본도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과학수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입니다."

특히 그는 "국과수가 발간한 <과학수사편람>(2002.12)과 <수사과학실무>(2003.2) 등 관련 실무서에는 모근이 없어도 감정할 수 있다고 적어 놓고도 경찰 등은 재판과정에서 '모근이 없어서 시행하지 않았다'고 했다"며 "참으로 모순되고 납득할 수 없는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이어 "2004년을 전후해 국과수에서 모근 없는 모발을 감정한 사실이 없었는지 되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은 증거·증인으로 범인을 잡아야 하는데 국가가 범인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정의한 고씨는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이제라도 아버지로서 명예를 되찾고 싶고, 또 다른 사법 피해자가 생기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 저와 같은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검찰은 진실된 수사를 해달라"고 호소했다.